"종전선언, 무엇이 문제인가?"

남북, 북미 합의보다 난망한 우리의 국론통일

박종완 기자 승인 2020.10.14 07:42 | 최종 수정 2020.10.14 07:45 의견 0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문재인 대통령이 집요하고도 고집스럽게 종전선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마침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나 빛이 바랬음에도 굴하지 않고 종전선언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야당은 문대통령의 종전선언 집착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오히려 위협하는 행위라며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놓고도 여야 간 첨예한 입장 대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사랑하는 남녘 동포와 손을 맞잡길 기원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남북관계 복원의지 표명이라고 적극 평가하면서, 종전선언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야당 측은 “문정부가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ICBM과 SLBM 공개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실체와 의미 없는 립 서비스에만 집착 한다”고 비난했고, 그동안 직접적 대여공세에 미적거리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까지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종전선언은 대한민국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종전선언에 대해, 정부여당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중대한 계기나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강조하고 있고, 야당 측은 북한의 태도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종전선언은 우리만 스스로 무장해제 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원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뇌세포 구조를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도움이 되기보다 부작용만 심각할 것으로  예견된다면 문대통령의 집착은 즉각 재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과연 종전선언이란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이며, 현 시점에서 시급한 것이고 또 우리가 합의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실현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해 차분히 따져봅시다.

현재 남북은 ‘정전협정’에 의해 상호간 전투행위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휴전협정이냐 정전협정이냐’라는 용어의 차이를 따지는 시각도 있지만, 한반도 전쟁상태를 일시 봉합하고 70년 가까이 휴전상태라는 점에서, 휴전이냐 정전이냐는 단어는 사실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전쟁상태가 종결된 것이 아니고 일시 중단상태라는 의미는 같다는 말씀입니다.

1953년 7월 27일의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과 전투행위의 중지만을 합의했을 뿐이고,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의미하는 정치적 문제들은 뒤로 미뤘습니다. 미국, 중국, 소련, 북한 등이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상태를 끌고 갈 동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일단 ‘휴전’이 다급했었고, 대한민국의 이승만대통령만 북진통일을 외치며 정전협정에 반대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전협정은 UN군총사령관 M.W.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간에 서명으로 이뤄집니다. 정전협정을 체결한 뒤 1954년 4월 26일부터 제네바에서 “한반도 통일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문제와 외국군 철수문제를 다루기 위한 정치회담”이 열리지만, 그해 6월 15일 아무 결론 없이 회담이 결렬됩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연결되지 못한 배경에는, 전쟁 당사자 양측의 첨예한 입장 차이와 더불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란 점, 미국이나 UN이 중공이나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점 등도 어설픈 협정으로 봉합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1974년부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는 주한미군 철수 등 남한 내 혁명조건 성숙이라는 적색통일전략의 일환으로 그 속내가 뻔히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협상의 당사자는 정전협정에서 빠진 대한민국을 당연히 제외해야 하며,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 전환을 위한 협상 당사자라는 이른바 ‘통미봉남’ 전략을 고수하게 됩니다.

1974년 3월 2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대미 서신을 통해, 정전협정 폐지와 조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문하지만 미국이 이를 일축합니다. 1975년 9월 제30차 유엔총회에서는 주한 외국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을 요구하는 북한 측 결의안이 우리 측이 제출한 결의안과 함께 동시 통과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현재 한반도는 정전협정으로 전투행위가 중단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은 정전협정을 이미 무시한지 오래고, 대한민국도 형식상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내용적으로 대한민국은 UN군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북한 측의 일방적 주장임)을 인정한다면, 언제든 북침을 감행할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이런 불안정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임에 분명합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통일이 최선의 해법이지만, 그 전 단계로 종전선언과 함께 남북한과 미중 등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결이 현실적이며 나름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평화협정 추진의 결정적 걸림돌은 북한의 핵개발과 핵무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으로선 북한의 ‘핵 포기’를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이른바 ‘종전선언’은 정부여당 쪽에서도 설명하듯 어떤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 선언의 의미라고 합니다. 통상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 합의된 이후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볼 때, 평화협정의 길이 난망한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문재인 정부는 먼저 종전선언을 하고 거기에서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에도 진전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반면, 야당은 종전선언 그 자체만으로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진 만큼, 평화협정 역시 핵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으며, 종전선언은 곧바로 UN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의 명분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건재하다 해도, 한미동맹이 근본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며, 우리가 사실상 ‘핵 인질’이 되어 북한과 중국의 의도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착상태에 놓인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구축 프로세스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북한을 믿고 대화를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협상의 수준을 높여간다면, 그래서 북한이 꼼짝할 수 없는 수준의 평화체제 구축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문대통령의 업적은 길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이 남북정상간 합의조차도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문대통령의 생각이 순진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대전제로 볼 것이냐, 아니면 평화구축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것이냐 하는 관점의 차이가 종전선언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과연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종전선언’이 망국의 길이 될 것이라는 주장 중에서 어느 쪽이 맞는지는 각자의 판단과 선택의 몫이 되며, 이른바 진영논리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게 될 듯합니다.

종전선언부터 문제를 풀어가자는 문대통령의 생각이 진영논리를 떠나 국민적 합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과연 북한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 먼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북한 권력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놓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는 대단히 난망하다고 생각됩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든, 국가채무 확대든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한 시기의 국가경영을 책임진 정권이 자신들의 국가 경영 비전과 철학을 구체적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서 이 나라를 일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대북정책도 그 범위에서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문대통령의 선(先) 종전선언 추진론이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 한반도 상황을 아무런 전제 없이 ‘6.25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통일정책에 버금갈 수준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직후, 종전선언 추진에 서로 협력한다는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그 동안 어떤 이유로 진척이 없었는지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할 것입니다.

북한 권력이 핵무장에 대한 집요한 집념을 배경으로, 언제든 수틀리면 군사적 도발을 자행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김정은의 유화적 립 서비스에 우리의 대북정책 기조가 좌우된다는 인상을 줘서는 결코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도 얻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을 억누르며 추진하는 대북정책이 결코 성공할리도 없을 것입니다.

문대통령의 종전선언 선행론이 북한과 중국 권력의 입장에 우선한 것이라는 비난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미동맹을 우습게 본 탓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라 망치려고 작정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를 선택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긍심을 깎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러나 현 시기의 종전선언 선행론은 최소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절반으로 갈라 극단적인 남남갈등을 부추길 것이며, 비핵화 조건을 최우선하는 미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 조야의 일부가 종전선언에 긍정적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만, 기본 전제조건이 다르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과 타격을 입은 경제력 복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국론분열과 갈등이 폭발하게 될 것으로 예고되는 정책을, 코로나 대처를 위해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까지 유보시키며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아무리 그 진의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국론 분열을 가장 경계해야 할 시기입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치고 화합해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데 올인해야 할 때입니다. 종전선언을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전진하겠다는 문대통령의 뜻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제발 종전선언 얘기를 묻어두라고 강력하게 말리고 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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